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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나침반] 0과 1로 설명되지 않는 곳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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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로 설명되지 않는 곳에서 살아남기

글: 이병화 사회복지사

편집 및 디자인: 혁신소통실

 

어릴 적, 나는 컴퓨터를 좋아했다. 모니터 화면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에 늘 호기심이 가득했다. 내가 실행한 메뉴가 무슨 프로그램이고 어떤 기능인지 잘 알지 못했어도, 궁금한 것들을 일일이 클릭해 보면서 하나씩 깨우쳐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그렇게 스스로 열심히 몰두한 것은 컴퓨터가 처음이었고, 그때의 시간들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나름의 독학이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할 시기, 장래에 내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일하면 좋을까 상상해 보면서, 자연스럽게도 내가 좋아하는 컴퓨터 관련으로 일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컴퓨터공학과 진학을 찾아보게 되었다. 하지만 삶은 바라는 대로만 이루어지지 않듯이, 컴퓨터공학 전공으로의 진학에는 부족한 수학 성적이 발목을 잡았다. 나름 수학적인 사고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진학에 필요한 수학 성적과는 별개의 이야기였고, 흔히 말하는 성적에 맞추어진학 계획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계획에 없었던 사회복지전공 진학으로 사회복지분야를 처음 마주하게 되었다. 01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컴퓨터 세상과는 달리, 인간 개개인의 다양한 욕구와 문제 상황에 대한 이해와 접근을 다루는 사회복지는 매우 낯설었다. 지루한 사회복지개론을 듣고 있을 때면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으로 내가 장차 취업을 하고 일할 수 있을지도 막연했다.

 

막연함도 잠시, 군 생활은 내게 일단 해보자는 마음가짐을 가르쳐 주었고, 그러던 중 사회복지 현장실습을 계기로 장애인복지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특별한 이유 없이 좋아해 주는 이용자들을 만날 수 있었고, 내가 그들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앞으로 장애인복지관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했고,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이곳 하상에 오게 되었다.

 

2014년 하상 입사 당시 첫 소속은 기획홍보팀이었다. 면접 당시 기획 업무가 무얼 하는지 알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명확히 답을 하지 못했었는데, 첫 출근을 앞두고도 기획 업무가 일단 해보자는 마음이면 잘할 수 있는 일일까걱정하며 고민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런 내게 안도감을 준 것은 역시 컴퓨터였다. 복지관에서 진행되는 모든 업무에서 행정은 빠질 수 없이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컴퓨터를 잘할 수 있으면 그런 부분에서 훌륭히 역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침 담당한 업무는 행정력이 요구되는 부분들이 많았고, 내가 새로이 시도하고자 하는 방향에 주변 많은 선생님들이 지지는 의지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상은 별종 사회복지사 같은 내가 하상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지지해 주었고 기다려주었다.

 

10여 년간 하상에 근무하면서 종종 선생님은 다른 직종이 더 잘 맞지 않아? 어쩌다 사회복지사를 하게 되었지?” 궁금해하는 말을 듣곤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컴퓨터에 빠져 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누군가가 컴퓨터공학 전공자가 되지 못한 것에 후회하는지 묻는다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다. 지금 사회복지사로서의 삶이 어릴 때 내 모습과 상반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01로 설명되지 않는 사회복지 안에서 컴퓨터를 좋아하는 사회복지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특별하고 감사한 일이다. 지나온 10년만큼, 별종 사회복지사로서의 앞으로 10년이 더욱 설레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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