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장(후회 없이 살아가는 삶)을 수상하면서
본문
신도 완벽하지 않았다. 현재 내 심정도 가슴을 파는 아픔이 와 있었다.
"복수초"
난 이것이 복수를 하기 위하여 고진감래로 살면서 용을 품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것과는 정반대였다. 사랑의 용서가 바로 복수초였다. 이러하기에 내가 아픈 가슴을 안고 살아가고 있음이 어찌보면 견뎌내는 힘이 있기에 행복이었다. 나는 한다. 내가 사람들을 위하여 희생을 한다. 그것이 나의 행복인지 모른다.
누군가를 위해서 엎더리고 부탁을 하는 것도 행복이었다. 바보는 용심을 내지 않는다. 걷다가 보면 그런 사람이 내게로 왔다.
행복하다고 슬픈것이 사라지거나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을 잡고 있을 때에 약이 되는 것도 독이 되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삶의 불랙박스는 그 때에 가서 그에 맞게 조절하면 문제가 되지 않게 열리게 됨을 살아가면서 알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응원석에 앉았다. 준 결슴이 끝나고 결슴전에 이르러 한 명의 선수가 쓰러졌다.
"당근 응급 구조사인 내가 나서야 하지요."
선수의 발목을 상으로 올리면서 근육이완 마사지를 해주어 경직을 풀어주었다. 장애인이라 일반안보다 더 빨리 풀렸기에 하느님께 감사를 하였다. 그 마지막으로 수지침을 꺼내어 주사를 통증이 완화되고 있음을 보았다. 나의 이런 치료행위에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서 전무구급교육이수자 임을 핸드폰 사진으로 확인를 시켜준 경험의 봉사도 떠올랐다.
나 역시 밤에 발목과 허벅지에 경직이 일어나면서 두 번이나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심한 통증이기에 어제의 그 축구선수의 얼굴이 떠 올랐다.
오늘은 쉬고 싶지만 강선생과 약속을 하였기에 움직이려고 하여싸.
"아, 콩, 귀찮아!!!"
새벽 잠이 얼마나 달콤한지 15분을 버티다가 세수를 하였다. 아니 샤워를 하면서 역사의 빠른 길로 가면서 여러가지 경우의 수에 쉽고 빠름을 알게 되었다. 늦었다고 늦는 것이 아니고 빨랐다고 빨리 도착하지 않는 삶을 배울 수가 있었다.
모드 마음에 긍정을 하면서 내가 움직이는 거리는 무겁게도 가볍지도 않았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하지 못하는 것은 자연치유력으로 믿어야 하였다.
민들레가 꽃이 피면 돌아오지 않는 사람의 모습도 만듭니다. 그 사랑을 알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보였다.
하느님의 모습은 나환자, 거지, 소경 등으로 우리가 생각지 않은 모습으로 옆에 있는 몰랐다.
순교복자 구성열 바르바라님! 때론 흔들리지만
저희도 반듯한 심지로 묵묵히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관덕정에서)
그 앞에 짊어진 것은 나의 십자가로 무거웠지요. 십자가의 사랑으로 느낀 것은 깊이도 없고 넓이 작게 나에게 보여 주셨어요. 내가 하느님 앞에 봉사를 한 모습이 참으로 작은 것임을 알려주는 보았습니다.
"난 그래도 하느님을 사랑해도 될까요!!"
당신이 오신다는 말씀을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오직 한번도 작은 공간 만의 경우가 저라는 알게 한 경우는 어떤 자매님이었습니다. 그럼 그 분이 하느님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 분을 다시 만나려고 할 때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수수팥떡 하나만 내 손에 쥐어 간 기억으로 저는 하느님을 만난 것입니까?
행복함도 지나가야 알 수가 있다. 난 지금 나의 행동이 행복이라고 할 수 없었다. 행복으로 보면 오답을 내는 명확히 말이 있기에 그 답을 지웠다.
"나도 이제 사랑도 하고 행복하고 싶어요."
피도 눈물도 인정도 다 말라버린 세상에서 가장 가깝게 지내려고 접근하면 그들은 떠나갔다.
다시 오지 않았다.(이인수 베드로, 선종옥 베네딕토의 젊은 날의 선종) 내가 행복으로 가려고 하면 악마는 거미줄과 같은 철사로 나를 가로막는 고문을 하였다.
눈이 오는 날이라 마음이 설레이고 있었다. 뛰고 앉고 또 뛰고 달리는 사회에 행복이 있었다. 나를 채우는 희망이 있어 보람을 느꼈다. 봉사에 대하여 갈등의 연속이다. 봉사는 어느 경우의 수에서 패배의 얼룩으로 가득챘다. 오늘의 봉사는 부담이 되었다. 정상적인 생활과 모든 몸이 부어오르고 있음이 느껴졌다.
사람의 만남에서 그리고 이별에서 더 이상은 없음을 바라었다. 행운과 행복은 함께 온다. 비가 내리고 눈이 온다고 하여도 기분에서 약간이라는 변화도 오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면 그에 맞는 상처를 받앗다. 간단하게 요리를 하여도 실수가 반드시 따라 다녔다. 삶에서 오차가 없다면 재미가 없음이 보였다.
"당신은 행복할 자격이 있어요."
나에게 주는 현명한 자격으로 공인중개사 자격증과 바꾸어 자원봉사의 실행을 하였다. 이것이 현명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일이라 하여도 그 선택은 참이었다.
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우선순위에 놓아야 한다. 바부대장 김수환 추기경님, 바부 선교 이태석 신부님은 아프리카에서 꽃으로 봉사를 만들었다.
이것이 진정한 천주교 신앙의 꽃이다.
인천광역시장상을 4년 연속으로 받았다. 처음 받을 때는 3년이 걸렸으나 그 다음부터 나를 잘 관리하여 1년에 한 번씩 매년 받았다.
받으러 갈때마다 느낀 것은 같은 사람이 받는 다는 것이었다. 상의 변화에서 더 열심히 추격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봉사횟수와 시간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전에 이렇게 않은 시기에 있었던 것은 모두 지워졌지만, 뒤늦게나마 봉사자의 권리를 자원봉사센테에서 관리하고 있음에 감사는 하는 마음이 생겼다.
인천관역시 금장 상을 수상하고 나오니 함박눈이 펄펄 날려 다녔습니다.
모두 모두 축하를 하여 주러 하느님까지 오셨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은 하느님이 주시는 포도주와 살을 먹으러고 식당으로 갈 것 입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게 자란 딸인 공주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들이 있기에 내가 더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릅니다.
가족이 함께 한 저녁으로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복수초"
난 이것이 복수를 하기 위하여 고진감래로 살면서 용을 품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것과는 정반대였다. 사랑의 용서가 바로 복수초였다. 이러하기에 내가 아픈 가슴을 안고 살아가고 있음이 어찌보면 견뎌내는 힘이 있기에 행복이었다. 나는 한다. 내가 사람들을 위하여 희생을 한다. 그것이 나의 행복인지 모른다.
누군가를 위해서 엎더리고 부탁을 하는 것도 행복이었다. 바보는 용심을 내지 않는다. 걷다가 보면 그런 사람이 내게로 왔다.
행복하다고 슬픈것이 사라지거나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을 잡고 있을 때에 약이 되는 것도 독이 되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삶의 불랙박스는 그 때에 가서 그에 맞게 조절하면 문제가 되지 않게 열리게 됨을 살아가면서 알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응원석에 앉았다. 준 결슴이 끝나고 결슴전에 이르러 한 명의 선수가 쓰러졌다.
"당근 응급 구조사인 내가 나서야 하지요."
선수의 발목을 상으로 올리면서 근육이완 마사지를 해주어 경직을 풀어주었다. 장애인이라 일반안보다 더 빨리 풀렸기에 하느님께 감사를 하였다. 그 마지막으로 수지침을 꺼내어 주사를 통증이 완화되고 있음을 보았다. 나의 이런 치료행위에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서 전무구급교육이수자 임을 핸드폰 사진으로 확인를 시켜준 경험의 봉사도 떠올랐다.
나 역시 밤에 발목과 허벅지에 경직이 일어나면서 두 번이나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심한 통증이기에 어제의 그 축구선수의 얼굴이 떠 올랐다.
오늘은 쉬고 싶지만 강선생과 약속을 하였기에 움직이려고 하여싸.
"아, 콩, 귀찮아!!!"
새벽 잠이 얼마나 달콤한지 15분을 버티다가 세수를 하였다. 아니 샤워를 하면서 역사의 빠른 길로 가면서 여러가지 경우의 수에 쉽고 빠름을 알게 되었다. 늦었다고 늦는 것이 아니고 빨랐다고 빨리 도착하지 않는 삶을 배울 수가 있었다.
모드 마음에 긍정을 하면서 내가 움직이는 거리는 무겁게도 가볍지도 않았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하지 못하는 것은 자연치유력으로 믿어야 하였다.
민들레가 꽃이 피면 돌아오지 않는 사람의 모습도 만듭니다. 그 사랑을 알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 보였다.
하느님의 모습은 나환자, 거지, 소경 등으로 우리가 생각지 않은 모습으로 옆에 있는 몰랐다.
순교복자 구성열 바르바라님! 때론 흔들리지만
저희도 반듯한 심지로 묵묵히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관덕정에서)
그 앞에 짊어진 것은 나의 십자가로 무거웠지요. 십자가의 사랑으로 느낀 것은 깊이도 없고 넓이 작게 나에게 보여 주셨어요. 내가 하느님 앞에 봉사를 한 모습이 참으로 작은 것임을 알려주는 보았습니다.
"난 그래도 하느님을 사랑해도 될까요!!"
당신이 오신다는 말씀을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오직 한번도 작은 공간 만의 경우가 저라는 알게 한 경우는 어떤 자매님이었습니다. 그럼 그 분이 하느님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 분을 다시 만나려고 할 때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수수팥떡 하나만 내 손에 쥐어 간 기억으로 저는 하느님을 만난 것입니까?
행복함도 지나가야 알 수가 있다. 난 지금 나의 행동이 행복이라고 할 수 없었다. 행복으로 보면 오답을 내는 명확히 말이 있기에 그 답을 지웠다.
"나도 이제 사랑도 하고 행복하고 싶어요."
피도 눈물도 인정도 다 말라버린 세상에서 가장 가깝게 지내려고 접근하면 그들은 떠나갔다.
다시 오지 않았다.(이인수 베드로, 선종옥 베네딕토의 젊은 날의 선종) 내가 행복으로 가려고 하면 악마는 거미줄과 같은 철사로 나를 가로막는 고문을 하였다.
눈이 오는 날이라 마음이 설레이고 있었다. 뛰고 앉고 또 뛰고 달리는 사회에 행복이 있었다. 나를 채우는 희망이 있어 보람을 느꼈다. 봉사에 대하여 갈등의 연속이다. 봉사는 어느 경우의 수에서 패배의 얼룩으로 가득챘다. 오늘의 봉사는 부담이 되었다. 정상적인 생활과 모든 몸이 부어오르고 있음이 느껴졌다.
사람의 만남에서 그리고 이별에서 더 이상은 없음을 바라었다. 행운과 행복은 함께 온다. 비가 내리고 눈이 온다고 하여도 기분에서 약간이라는 변화도 오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면 그에 맞는 상처를 받앗다. 간단하게 요리를 하여도 실수가 반드시 따라 다녔다. 삶에서 오차가 없다면 재미가 없음이 보였다.
"당신은 행복할 자격이 있어요."
나에게 주는 현명한 자격으로 공인중개사 자격증과 바꾸어 자원봉사의 실행을 하였다. 이것이 현명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일이라 하여도 그 선택은 참이었다.
내가 행복할 수 있다면 우선순위에 놓아야 한다. 바부대장 김수환 추기경님, 바부 선교 이태석 신부님은 아프리카에서 꽃으로 봉사를 만들었다.
이것이 진정한 천주교 신앙의 꽃이다.
인천광역시장상을 4년 연속으로 받았다. 처음 받을 때는 3년이 걸렸으나 그 다음부터 나를 잘 관리하여 1년에 한 번씩 매년 받았다.
받으러 갈때마다 느낀 것은 같은 사람이 받는 다는 것이었다. 상의 변화에서 더 열심히 추격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봉사횟수와 시간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전에 이렇게 않은 시기에 있었던 것은 모두 지워졌지만, 뒤늦게나마 봉사자의 권리를 자원봉사센테에서 관리하고 있음에 감사는 하는 마음이 생겼다.
인천관역시 금장 상을 수상하고 나오니 함박눈이 펄펄 날려 다녔습니다.
모두 모두 축하를 하여 주러 하느님까지 오셨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좋은 날은 하느님이 주시는 포도주와 살을 먹으러고 식당으로 갈 것 입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게 자란 딸인 공주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들이 있기에 내가 더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릅니다.
가족이 함께 한 저녁으로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