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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나침반] 장애에 대한 봄바람
[하상나침반] 장애에 대한 봄바람 글: 주간보호센터 배명희 편집 및 디자인: 혁신소통실 코끝이 얼어붙는 겨울이었다. 나는 어떤 복지와 맞을까? 생각하며 아동복지, 노인복지, 장애인복지 두루두루 자원봉사를 다니던 겨울이었다. 어느 날 발달장애인 계절학교 보조교사를 뽑는다는 공지가 눈에 들어왔다. 경험도 쌓고, 돈도 벌고... 커피 한 잔도 손 벌벌 떨며 사먹던 가난한 대학생 시절 너무나 구미가 당기는 글이었다. 서류와 면접을 보고 계절학교 보조교사가 되었다. OT날 담당 사회복지사는 이용자의 특이사항이 적힌 종이 한 장을 주셨다. 거기에 가장 눈에 띈 것은 빨간 별표와 [ADHD. 폭력성 있음.]이라는 간략한 한 줄이었다. 덧붙여 담당 사회복지사가 “00이는 경계선 자폐인데 ADHD 중복장애에요. 폭력성을 가끔 보이는데 인지가 높은 편이라 잘 따라올 거예요.” 가볍게 얘기하셨다. 속으로 ‘ADHD면 조금 산만 한 건가?’ 생각하며 처음 만나게 되는 ADHD 이용자에게 가장 호기심을 느꼈다. 계절학교가 시작되고 00이는 정말 폭주기관차 같은 아이었다. 가장 특이하게 느꼈던 것은 밥을 정말 너무 진짜!!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었다. 계절학교 첫 째 날 점심은 만둣국이었는데 자기가 가장 먼저 받아야한다며 식당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몇 십 명의 장애인을 처음 본 듯한 사장님은 크게 당황하며 00이에게 가장 먼저 만둣국을 내어주었다. 00이는 만둣국을 받자마자 용암처럼 펄펄 끓는 뚝배기의 만둣국을 허겁지겁 입에 넣었다. 뜨거웠는지 만두를 뱉었다가 다시 먹고, 뱉고 다시 먹고 정말 묘기였다... 사건은 정말 추운 어느 날 강가 근처에 위치했던 치즈마을에서 터졌다. 치즈 체험을 하고 쉬는 시간에 00이는 평소 관심이 많았던 물고기를 보고 싶다며 얼어있는 강가에 뛰어들었다. 나의 날카로운 소리에도 개의치 않고 언제 깨질지 모르는 얼음 위를 쿵쾅쿵쾅 뛰어 다니고 있었다. 머리를 굴려 “00아. 물고기 추워서 강에 없어. 집에 갔어.”라고 말하자 “아~ 그래서 물고기가 안 보였구나.”하고 드디어 맨 땅을 내딛은 찰나에 치즈마을 관계자가 지나갔다. “아저씨. 물고기 추워서 집에 갔어요?”라고 물었는데 나의 엄청난 텔레파시에도 남성분은 이렇게 말했다. “물고기는 추위 안 타. 하하하하. 강에 있지.” 하...제발... 00이는 나를 흘겨보고 바로 강가로 뛰어들었다. 위험하다는 나의 고함 소리에 휙 무언가 날라 왔다. 큰 돌멩이였다. “거짓말쟁이. 저리 가!” ‘나는 어디인가. 나는 무엇인가. 볼이 찢어지게 춥다. 집에 가고 싶다.’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찢어 질듯 한 내 볼 옆으로 두 번째 돌멩이가 날라 왔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치즈 마을 관계자가 00이를 어깨에 들쳐 업어 돌아올 수 있었다. 10살 아이에게 남자 어른은 꽤나 무서운 존재였던 것 같다. 그날 나는 ADHD에 대해 공부가 필요하다고 크게 느꼈고 10년은 더 지나 지금은 제목이 기억 나지 않지만 ADHD를 겪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었다. 책을 읽고 ADHD에 대해 가장 잘 못 생각했던 것은 ADHD는 산만하기만 할 것이라는 잘못된 나의 정의였다. 주의력 결핍뿐 아니라 과잉행동도 ADHD에 특성이라는 것을 책을 보고 알았다. 00이가 왜 가장 먼저 밥을 먹고 싶어 했는지, 뜨거워도 밥을 입에 우겨 넣었는지, 위험한 강가에 뛰어들어 물고기가 보고 싶었는지 퍼즐이 맞춰졌다. 다음 날부터 00이의 특성에 맞게 지도를 시작하였다. 고함소리로 가득했던 점심시간에는 00이가 좋아하는 물고기를 얘기하며 밥을 기다렸고, 뜨거운 국에는 찬물을 부어 식혀 먹이고, 위험한 행동이나 폭력적인 행동을 보일 때면 하면 안 되는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하고 화제를 전환시켜주었다. 산만한 만큼 생각보다 화제전환이 00이에게는 특효약이었다. 이후 계절학교 선생님들에게 감사편지를 쓰는 마지막 활동 시간. [수고하시는 선생님. 마지막 날인데 다음 주에 않아요. 저 보고 싶죠?] 00이에게 감사 편지를 받았다. 아마 다음 주부터는 만나지 못하는데 자신이 보고 싶지 않겠냐는 의미로 해석했다. 그렇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00이의 얼굴이 또렷하다. 그날 나는 여러 보조교사 중에 가장 많은 감사 편지를 받았고 몽글몽글 내 가슴에 장애에 대한 봄바람이 불었다. 2018년 5월 봄바람이 불던 어느 날 나는 장애인 복지에 발을 디뎠다.본문